이이 나오마사(1/2)이이의 붉은 악마
이이 나오마사
- 기사 카테고리
- 인물기
- 이름
- 이이 나오마사(1561년~1602년)
- 출생지
- 시즈오카현
- 관련 성, 절, 신사
히코네 성
국보 천수다카사키 성
오다와라성
미노와 성
중국의 역사에 비해 전국 시대라고 불린 전란의 세상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종지부가 찍혔습니다. 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천하 통일을 도운 가신들 중 특히 유력한 4명을 도쿠가와 시텐왕이라고 부릅니다. 이 시텐왕의 1명, 히코네 번의 기초를 쌓은 것이 이이 나오마사였습니다. 붉게 물든 군단을 이끌고, 선두에 서서 계속 싸우고, 항상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도운 이이 나오마사. 오늘은 도쿠가와 가의 이이 나오마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나오마사 탄생
이이 나오마사는 에이로쿠 4년(1561), 이마가와 가문에 속했던 이이 나오 부모의 적남으로 태어납니다.
이이 씨는 대대로, 도에구니 이이야(현재의 시즈오카현 하마마츠시 기타구 인사마치 이이야)의 국인 영주였습니다. 나오마사가 태어난 해, 오와리국에서 오다 노부나가와 이마가와 요시모토와의 싸움(카사사마의 싸움)이 있어, 이이야의 당주, 이이 나오모리는 이 싸움으로 전사해 버립니다.
또, 이이가가 섬기고 있던 이마가와가의 당주 이마가와 요시모토도 토벌되어 버렸습니다. 거기서 이마가와가는 요시모토의 아이, 이마가와씨 마코토가 새로운 당주가 되어 도카이 지방을 다스리게 됩니다.
그런데 그 다음 해, 나오마사의 아버지, 이이 나오 부모가 모반의 혐의로 죽이면, 2세였던 나오마사도 생명의 위험이 걸립니다. 그 나오마사를 이마가와가의 가신, 신노친구의 탄원에 의해 도와졌고, 나오마사는 친구 아래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도 전투에서 토사해 버립니다.
또 에이로쿠 11년(1568) 카이국의 다케다가가 이마가와가를 위협하면, 열세에 세워진 이마가와 씨 마코토는 직정을 죽은 자로 하는 것으로 이이가의 소령을 병거하려고 획책. 생명의 위험이 있던 직정을 주위의 사람은, 출가시키는 일로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이렇게 이이가가 섬기고 있던 이마가와가는, 서쪽에서 도쿠가와가, 동쪽에서 다케다가에 의해 침공되어 멸망해 버립니다.
텐쇼 2년(1574), 나오마사는 환속함으로써 스님에서 무사로 돌아가 미카와국의 도쿠가와가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이만 치요라고 자칭하게 됩니다. 도쿠가와가를 섬기는 일이 된 나오마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소성으로서 세워져 이에야스의 옆 근처에서 보내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에야스의 가신으로서
이이 나오마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코성으로 섬기면 수많은 싸움에 참가합니다. 특히 타카텐진성의 싸움에 참가하는 등 다케다가와의 싸움으로 전공을 꼽았습니다.
텐쇼 10년(1582), 22세에 전복해, 여기서 이이 나오마사라고 자칭합니다.
그런데 같은 해,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의 이상으로 자해해 버립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때 오다 노부나가에게 인사를 하고 상경해 사카이에 체재하고 있었습니다. 이에야스와 그 가신단은 사카이에서 미카와국으로 가는 길을 넘어 귀국하게 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이가 넘어입니다.
나오마사도 이 일행에 들어가 있어, 떨어지는 무자 사냥 등과 싸웠습니다. 나오마사는, 주위도 눈을 바라보는 듯한 일을 보여, 이에야스로부터 공작의 날개로 만든 진바오리를 포상으로서 받은 것입니다.
이 진바오리는 니가타현의 화판에 있는 민속 자료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위기에 직면했던 이에야스 일행은 무사히 미카와국으로 귀국할 수 있었습니다.
이이의 붉은 준비
카이쿠니·시나노국의 다케다가가 멸망하고, 그 후에 지배하고 있던 오다가도 혼노지의 변에 의해 지배 체제는 붕괴했습니다.
따라서 카이 나라, 시나노국은 통치하는 자가 없는 공백지대가 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가 넘어 미카와국으로 귀국하자 이 중부지방에 침공하여 병주했습니다(텐쇼 임오의 난).
이 지방을 지배하게 된 이에야스는 살아남고 있던 다케다가의 구가신 120명과 이에야스 부하의 직신의 일부를 이이 나오마사에 맡겼습니다.
나오마사는 다케다가에 비해, 장비품을 모두 붉은 색으로 가지런히 해 「이이의 붉은 준비」라고 불리게 됩니다. 이 이이가의 군장은 막부 말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이 나오마사는 타인에게 엄격하고 자신에게도 엄격한 인품이었기 때문에, 이이야에서 떠나는 집도 있었습니다. 거기서 직정에 기대하고 있던 이에야스는 직접, 이이가의 배속을 실시합니다.
주군인 이에야스가 배속에까지 입을 내면, 집도 직정에 반항할 수 없게 됩니다. 다케다가의 옛 가신을 붙이는 것도 이러한 이에야스의 의향이며, 직정을 한 손의 대장으로 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텐쇼 11년(1583), 이이 나오마사는 마츠다이라 야스시 부모(미카와 마츠이가의 소령)의 딸, 꽃(후의 당매원)을 이에야스의 양녀로 한 뒤 결혼합니다.
텐쇼 12년(1584)의 코마키·나가쿠테의 싸움에서, 나오마사는 붉은 준비가 된 이이가의 가신을 처음으로 이끌고 싸웁니다.
나오마사는 소년과 같은 어리석은 얼굴이었지만, 투구에는 악마의 뿔 같은 입물로 붉은 갑옷을 입은 용맹한 모습은 「이이의 붉은 악마」라고 불려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
간토 이봉과 다카사키 성
혼노지의 이상으로 오다 노부나가가 자해해, 이에야스가 공백 지대가 된 신슈를 병거하고 있을 무렵, 긴키 지방에서는 후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이때는 아직 하바시바 히데요시)가 대두해 옵니다. 단번에 세력을 늘린 히데요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도 싸우게 되었습니다. 코마키 나가쿠테 전투입니다.
이에야스와 히데요시가 싸운 코마키 나가테의 싸움은 장기화합니다.
장기화를 싫어한 히데요시는, 여동생이나 어머니를 인질로서 내는 것으로 이에야스를 납득시켜 신종시켰다.
이 히데요시의 어머니, 대정소나 그 사무라이가 이에야스 밑에 왔을 때, 이이 나오마사의 늠름한 무자만과 정중한 대접만에 감격해, 끌어들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텐쇼 14년(1586), 이에야스는 상경해 히데요시에 신종. 이이 나오마사의 평판을 들은 히데요시는 높이 평가하고, 종오위 아래에 서임하고, 도요토미의 성을 하사했다고 합니다.
또 도요토미가에 출입하는 일로 나오마사는 많은 다이묘와 교류를 가졌습니다.
이 때, 중국 지방의 다이묘였던 고바야카와 타카에에, 직정에는 천하의 정치를 담당하는 기량이 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텐쇼 18년(1590), 관동의 호조씨를 도요토미가가 공격합니다. 도쿠가와가는 도요토미가를 따라 참진합니다만, 이 오다와라 정벌에서 수많은 무장 중에서 유일하게 밤습을 걸어 오다와라 성내까지까지 몰아넣은 무장으로서 그 이름을 알리게 했다.
오다와라 정벌 직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도카이 지방에서 관동으로 이봉.
이 관동 이봉에 있어서, 이에야스는 이이 나오마사에게 우에노국 미노와(현재의 군마현 다카사키시) 12만석을 줍니다. 이 미노와는 관동의 북쪽 입구의 하나의 요충지로, 또 주어진 넓이는 도쿠가와씨의 가신 중에서도 최대였습니다.
미노와를 맡긴 나오마사는 게이쵸 3년(1598) 미노와성을 폐하고, 신성을 쌓아 타카사키성이라고 명명해 거성으로 했습니다.
세키가하라 전투
게이쵸 3년(1598),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합니다.
히데요시가 일으킨 조선의 역을 계기로 도요토미 가내가 분열하자 이이 나오마사는 도요토미가의 무장과 협상하여 도쿠가와가의 아군에게 끌어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이이 나오마사가 협상한 구로다 나가마사는, 다른 도요토미가의 무장에게도 말을 걸어 도쿠가와 쪽에 붙이는 데 성공. 이렇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다른 다이묘에게도 지지되는 것으로 대두해 나갑니다.
게이쵸 5년(1600), 도요토미가의 봉행이었던 이시다 미츠나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격돌한 세키가하라의 싸움이 일어납니다.
나오마사는 싸움 전부터 혼다 타다카츠와 함께, 다른 다이묘와의 협상을 실시해, 이시다 미츠나리에 붙어 있던 다이묘를 도쿠가와가의 측에 되돌리게 하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 작성자하즈키 토모요(라이터)학생 시절부터 역사와 지리를 좋아해, 사적이나 사찰 불각 순회를 즐기고, 고문서 등을 조사해 왔습니다. 특히 일본사에서는 중세, 세계사에서는 유럽사에 강하고, 1차 자료 등의 자료는 물론, 엔터테인먼트 역사 소설까지 폭넓게 읽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무장이나 성은 너무 많아 좀처럼 들 수 없습니다만, 특히 마츠나가 히사히데·아케치 미츠히데, 성이면 히코네성·후시미성을 좋아한다. 무장의 삶과 성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 일면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