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나 모리노부 (1/2)형에게 순종 한 다케다 가문의 왕자

니시나 모리노부

니시나 모리노부

기사 카테고리
인물기
이름
니시나 모리노부(1557년~1582년)
출생지
야마나시현
관련 사건

니시나 모리노부(니시나모리 노부)는 전국시대, 카이국의 다이묘 다케다 신겐의 5남으로 태어납니다. 성장하면 신슈의 호족인과가에 입양으로 들어가 시나노국 북부를 통치했습니다. 그런데 다케다 신겐의 무렵은 번창했던 다케다가였지만, 니시나 모리노부의 형에 해당하는 다케다 카츠요리가 이어지면 기세가 쇠약해 보는 사람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니시나 신모리는 형의 승뢰를 돕고 장절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이번에는 니시나 신성에 대해 보고 싶습니다.

니시나 모리노부의 탄생

니시나 모리노부는 카이쿠니의 다이묘, 타케다 신겐과 유가와 부인(신겐의 측실에서 유카와 신모리의 딸) 사이에서 히로지 3년(1557)에 태어납니다. 유명은 고로. 신겐의 5남으로 이모형제에게 다케다 요시노부, 카츠요리, 동모제 여동생에게 가쓰야마 노부다다, 마츠히메(오다 노부타다 혼혼약자), 키쿠히메(우에스기 경승정실)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다케다 신겐은 카이국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만, 이웃 나라의 시나노국에 침공합니다. 한층 더 시나노국을 지배하면, 국경을 접하고 있던 에치고국(현재의 니가타현) 우에스기 켄신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시나노국 아즈미군 모리성주의 니시나 모리마사도 다케다가 부하로서 우에스기가와 싸우고 있었습니다. 다케다가와 우에스기가가 크게 싸운 가와나카지마의 싸움(제4차)에도 니시나 모리마사는 참전하고 있었습니다만, 이 사이에 모리성에 있던 가신들이 우에스기가에 배신했습니다. 이 반란은 진압되었지만, 니시나 모리마사는 카이국에 연행되어 자해당했다고 유폐되었다고도 합니다.

이렇게 당주가 사라진 인과가. 다케다 신겐은 같은 시기에 시나노국을 구성하고 있던 국인중(지역의 소호족)을 회유하고 있었습니다. 카미노가에는 스스로의 아이를 당주로 넣고, 타카사카가에는 가신을 당주로 파견합니다. 그리고 에이로쿠 4년(1561) 연행된 니시나 모리마사의 딸과 혼인을 맺고, 자신의 아이인 니시나 모리노부를 당주로 했습니다(니시나 모리 마사에는 장남 차남이 있었습니다만, 다케다 신겐의 용서를 얻어 형제는 이이나와 신사의 신직이 되어 에도시대를 통해 신직을 맡습니다). 니시나가를 이은 니시나 모리노부는 다케다가 친족 100기의 대장이 되었습니다.

인과가를 이어

니시나 모리노부의 이어진 니시나가는, 헤이안 시대에 니시나쇼를 개발해 시나노국 아즈미군(현재의 나가노현 북부) 일대를 다스리는 대호족으로서 탄생했습니다. 시나노국의 호족으로서 기소 요시나카의 거병이나, 쇼쿠의 난등에 참가해 인과의 이름을 볼 수 있습니다.

무로마치 시대 후기, 전국 시대에 들어가면 시나노 수호가 된 오가사와라씨나 유력 국인이었던 무라카미씨와 제휴해, 시나노국에 침공해 온 카이국의 다케다 신겐에 대항합니다. 그런데 천문 17년(1548)에 인과가는 오가사와라가로부터 이탈해, 천문 19년(1550)에는 다케다가에 신종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케다가의 가신이 된 인과가는 다케다 신겐의 아들, 모리노부를 당주로 맞이하게 됩니다. 니시나 모리노부가 니시나가 당주를 이어받으면, 시나노국 아즈미군의 니시나 가령의 지행 안도 등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또 적대하는 우에스기가의 에치고국과의 경비나 교통로의 정비, 인과가 영하에 있는 국인중의 장악에 진력합니다. 또 텐쇼 5년(1577)에는 인과가나 아즈미군의 국인중이 고야산에 참배할 때, 유우조 광원을 스쿠보로 정하는 등 내정에 진력했습니다.

이렇게 10년 이상을 걸어 이웃 나라 우에스기 가의 경계를 하면서 신슈 북부를 진격하고 있던 성신. 그런데, 니시나 모리노부가 니시나 가령을 장악하고 있는 사이에 친부의 다케다 신겐이 죽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과 다케다 카츠요리

니시나 모리노부가 니시나가를 이어받을 무렵, 기내에서는 큰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에이로쿠 11년(1568), 오다 노부나가는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옹립해 상경합니다. 옹립된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무로마치 막부 15대 장군이 되었습니다. 오다가와 타케다가와는 당초 우호관계를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군인 아시카가 요시아키와 옹립하고 있던 오다 노부나가와의 관계가 무너지면,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제국의 다이묘에게 스스로를 지지하는 요청을 합니다. 다케다 신겐 아래에도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요청이 왔습니다.

이것을 받아 모토가메 2년(1571)의 무렵부터 오다 노부나가와 다케다 노부겐은 험악한 관계가 됩니다.
모토가메 3년(1572) 오다 노부나가의 토벌령을 아시카가 요시아키로부터 받은 다케다 신겐은 카이국을 출발합니다. 도중, 미카와국을 영위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구축(미카타가하라의 싸움)했습니다. 그런데 이 서쪽 상도중에 다케다 신겐이 사망합니다. 가미카도 도중이었던 다케다 가문은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당주가 사라진 다케다가는 니시나 모리노부의 이모형인 다케다 카츠요리가 당주가 됩니다.

형인 다케다 카츠요리를 섬긴 니시나 모리노부는 계속해서 시나노국의 북부를 지킵니다. 다케다 카츠요리와 에치고국의 영주인 우에스기 경승이 동맹(신에츠 동맹)을 맺으면 동맹에 근거해 니시하마(니가타현 이토우가와시)의 네치성에도 진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형의 다케다 카츠요리가 신겐의 흔적을 이어, 니시나 모리노부가 신슈의 수호를 굳히고 있는 같은 무렵, 오다가와 다케다가와는 빼앗기지 않는 상태가 되어 있었습니다.

고원성 전투

다케다가의 당주가 된 다케다 카츠요리. 카츠요리는 미카와, 토에(현재의 아이치현 동부에서 시즈오카현 서부)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싸우고 있었습니다. 도쿠가와가의 옆에는 오다가도 붙어 있었으므로 필연적으로 다케다가는 도쿠가와, 오다가와 긴장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텐쇼 3년(1575)에 다케다 카츠요리는 미카와국에 침입. 도쿠가와가는 오다 노부나가의 조력을 얻고 저항해 나가시노의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이 전투에서 다케다가는 대패. 다케다가는 많은 가신을 이 싸움으로 잃고, 주변국에 침공하고 있던 입장에서 수세로 돌아, 시나노국, 카이국의 방위에 힘을 쏟습니다.

텐쇼 9년(1581) 다케다 카츠요리는 군사 재편을 실시해, 니시나 모리노부는 본령인 시나노쿠니 모리성 외에 고원성의 성주를 겸임했습니다. 그런데 다케다 카츠요리의 정치에 불만을 품은 친족과 가신들이 잇달아 배신합니다. 다케다 신겐의 아가씨에 해당하는 기연의창이 오다가에 이반. 기소타니를 영위하고 있던 키소 요시마사가 배신한 일로, 오다가의 본령 미노국과 시나노국과의 국경이 수박이 되었습니다.

텐쇼 10년(1582) 2월, 오다 노부나가는 오다가, 도쿠가와가, 간토의 호조가에 의한 고슈 정벌을 실시합니다. 니시나 모리노부는 오다야마 마사나리·대학 조형제와 3000의 병사로 고원성에 농성했습니다. 고원성은 오다 노부나가의 장남 오다 노부타다가 이끄는 5만대군에 포위되었습니다.

오다 노부타다는 공성 직전, 니시나 모리노부에게 항복 권고를 했습니다만 모리노부는 거부. 사자로 방문한 스님의 귀를 깎아내어 쫓아냈다고 합니다.

3월 2일 이른 아침, 오다가는 고원성을 공격. 니시나 모리노부는 분투한 뒤 자칼을 냈다. 향년 26. 약 500명의 가신과 함께 토사해 고원성은 함락했습니다.

차례차례로 다케다 카츠요리를 본 한 다케다 가가 중에서, 니시나 모리노부는 끝까지 형을 배신하지 않고 장절한 최후를 이루었습니다. 절복 후, 수급은 오다 노부타다 아래에 전달됩니다. 또한 하세가와 무네히토에 의해 교토의 이치죠도리의 츠지에 다케다 카츠요리, 노부카쓰, 노부요시 등과 나란히 옥문에 걸렸습니다. 몸통은 니시나 모리노부를 당황하는 백성에 의해 두껍게 장사되었습니다.
니시나 모리노부의 아이들은 살아남았고, 대부분이 에도 막부의 깃발로 섬겨 메이지 이후도 계속된 집도 있었습니다.

고원성

고원성은 시나노국 이나군 고원(나가노현 이나시 고원쵸)에 있던 성으로 일명을 투산성이라고 합니다.
시나노국의 국인중이었던 스와씨, 이 스와씨의 일문이었던 고원요리계는 고원성을 거성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천문 10년(1541)에 고원요리계는 스와씨로부터 다케다 신겐에 내통하자 다케다가는 고원성을 시나노 이나 지방의 거점으로 대규모의 개축을 실시했습니다. 그 후, 다케다 카츠요리나 니시나 모리노부 등이 성주가 되었습니다만, 오다 노부나가의 손에 떨어집니다.

니시나 모리노부의 기사에는 계속이 있습니다

관련 사건
하즈키 토모요
작성자(라이터)학생 시절부터 역사와 지리를 좋아해, 사적이나 사찰 불각 순회를 즐기고, 고문서 등을 조사해 왔습니다. 특히 일본사에서는 중세, 세계사에서는 유럽사에 강하고, 1차 자료 등의 자료는 물론, 엔터테인먼트 역사 소설까지 폭넓게 읽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무장이나 성은 너무 많아 좀처럼 들 수 없습니다만, 특히 마츠나가 히사히데·아케치 미츠히데, 성이면 히코네성·후시미성을 좋아한다. 무장의 삶과 성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 일면도 있습니다.
일본 성 사진 콘테스트 .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