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키타 나오야 (1/2)센고쿠 3대 카오오 중 한 명

우키타 나오야

우키타 나오야

기사 카테고리
인물기
이름
우키타 나오야 (1529년~1581년)
출생지
오카야마현
관련 성, 절, 신사
오카야마 성

오카야마 성

전국시대, 비젠국(현재의 오카야마현)에 갑자기 전국 다이묘가 된 무장이 있었습니다, 우키타 나오야입니다. 현재의 오카야마현(비젠, 비중, 미작)은 전국시대, 아카마츠가가 수호 다이묘로서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카마츠가는 가신이었던 수호대의 우라카미가를 대신해, 그 우라카미가를 섬기고 있던 것이 우키타가였습니다. 이 우키타가에 태어난 나오야가 어떻게 다이묘가 되었는지를 이번에는 보고 싶습니다.

우키타 나오야의 우키타 가문이란?

우키타 나오야가 태어난 우키타가.
우키타가는 비젠국(현재의 오카야마현 동남부)에 있던 전국 다이묘입니다. 원래는 지명에서 유래하는 '부치다' 성이었지만, 적류가 글자를 맞추고 '우키타', 서류는 '부키타'를 자칭하고 있었습니다.

우키타가는 비교적 늦게 나온 다이묘로, 문헌상에서는 무로마치 중기에 비전국의 토호로서 우키타 성이 처음 나옵니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하리마, 비젠, 미작의 수호 다이묘 아카마츠가에 속하고 있었습니다만, 아카마츠가의 수호대 우라카미가가 대두해 오면 우키타노가는 우라카미가의 가신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비젠국의 다이묘 우라카미 가가신의 아들로서 우키타 나오야가 태어납니다.

나오야의 출생과 우라카미 가신

우키타 나오야는 향록 2년(1529), 우키타노가의 손자(아버지는 우키타 흥가라고 불리지만 불명)로서 숫돌성에서 태어납니다.

태어난 후의 향록 4년(1531), 비젠국전국 다이묘의 우라카미무라무네가 패사하면 비전국은 굉장히 혼란해 할아버지의 우키다능가나 아버지는 암살되었습니다. 우키타 나오야는 방랑한 후 우라카미 종경을 섬기고 두각을 나타냅니다. 우라카미가는 하리마국 등의 수호 다이묘였던 아카마츠가의 제일의 가신으로서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우라카미 종경의 형, 우라카미 마사무네도 아카마츠가를 섬기고 있었습니다만, 동생의 우라카미 종경은 비젠국에서 형으로부터 독립해 전국 다이묘화합니다. 우키타 나오야는 독립된 우라카미 종경 아래 모략에 뛰어 우키타 노가를 암살한 시마무라 성실, 현인 나카야마 카츠마사와 류노구치 성주였던 호소 전상을 살해하여 우라카미 종경의 지배력 강화 에 기여합니다. 이들 우키타 나오야가 실시한 암살, 모살 등으로부터 후년에는 사이토 미조, 마츠나가 히사히데와 나란히 『전국 시대의 3대 카오오』, 아키쿠니의 모리 모토나리, 이즈모국의 아마코 히사히사와 나란히 『 중국 지방의 삼대 모장」이라고합니다. 우키타 나오야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에도시대 초기에 코세 타케안이 쓴 『다이기』에서 들었던 일이나 당시의 군기물 등으로 각색된 면이 있습니다. 그 한편으로 친류 등을 모살한 사실도 있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창작된 이미지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또 현의 나카야마 카츠마사를 습격했을 때는 주인의 우라카미 무네경의 지시도 됩니다만, 나카야마 카츠마사를 습격한 일로 카츠마사의 거성이었던 비젠 카메야마성을 손에 넣었습니다. 나오야는 숫돌성에서 가메야마성으로 옮겨 오카야마성으로 옮길 때까지 15년간 이 성을 중심으로 비젠국에 영향력을 강화하게 됩니다.

나오야는 어렸을 때 비젠국 속을 방랑하면서 경제 발전지였던 비젠 후쿠오카 등을 보고 정치 등을 배우고, 한편으로 혼란한 비전국에서 반복된 암살 등도 봤다. 이를 위해 암살, 모살 등의 정치적 암투를 극복하는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나오야의 세력 확대와 오카야마 성의 발전

우라카미 종경을 섬기면서 카메야마성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대시키고 있던 우키타 나오야.

그런데 같은 시기, 비중국(현재의 오카야마현 서부)의 국인(지역의 소호족) 미무라가 부모가 대두해 옵니다. 미무라가 부모는 서쪽에 위치한 아키나쿠의 다이 다이묘 모리가에 속하면 동쪽에 위치한 비젠국으로 세력을 확대시켜 나갑니다. 에이로쿠 8년(1565) 미무라가 부모는 우라카미 종경이나 우키타 나오야의 세력하에 있던 미작국(현재의 오카야마현 북부)이나 비젠국에 침공해 소경쟁을 반복했습니다. 이에 화를 낸 우키타 나오야는 얼굴 낯선이었던 아와국의 나나토, 엔도 슌도리, 히데요시의 형제를 고용합니다. 형제는 중신과 협의 중이던 미무라가 부모를 단총으로 습격했습니다. 전국 시대에서도 드문 철포에 의한 암살입니다.

비중국의 미무라가 부모를 물리친 우키타 나오야는 우라카미 종경 아래 비전국의 세력 확대를 계속했다. 인사관계에 있던 가나가와 성주의 마츠다 모토키나 오카야마 성주였던 김광종고 등을 몰락시키면 자신의 영지에 통합 확대해 나갑니다.

모토가메 원년(1570)에는 오카야마성(이 당시는 이시야마성이라고 불렸습니다)을 손에 넣으면, 카메야마성에서 옮겨 성곽의 개축과 성시를 형성했습니다. 특히 성의 북쪽을 달리는 서국 가도를 성의 성하를 따라 바꿔, 사람의 흐름을 오카야마 성으로 불러오도록 도모합니다. 그리고 비젠국 동부에 있던 비젠 후쿠오카나 니시다이지 등 상업지에서 상인을 불러, 성시로 발전시켰습니다. 우키타 나오야는 가도를 정비하는 것으로 유통을 정돈해 경제 진흥을 도모했습니다. 이것이 현재까지 계속되는 오카야마의 발전으로 이어집니다.

우라카미가로부터의 독립과 우라카미 종경의 추방

그런데 에이로쿠 11년(1568), 미노쿠니 오와리국(현재의 기후현, 아이치현 서부)의 다이묘 오다 노부나가가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봉해 상경합니다.

다음 영록 12년(1569)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무로마치 막부 15대 장군이 되었습니다만, 우키타 나오가의 주인 우라카미 무네경은 장군이 된 요시아키에 신종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서 우키타 나오야는 독자적으로 아시카가 요시아키, 오다 노부나가와 연락을 취해, 게다가 니시 하리마의 아카마츠 마사히데와 맺어 우라카미 무네경에 반기를 휘두릅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스스로에 속하고 있던 기내의 국인중 등을 파견해 우키타 나오야를 응원했습니다.

그런데 모토가메 원년(1570) 오다 노부나가는 가나가사키의 퇴구, 누나가와의 싸움, 제1차 노부나가 포위망과 연전 계속해서 비전국의 내정에까지 손이 돌지 않게 됩니다. 노부나가가 파견하고 있던 기내의 국인들도 비전국에서 끌어올려 기내의 방어에 힘을 쏟았습니다. 오다 노부나가의 위협으로부터 해방된 우라카미 무네경은 숨을 불어 아카마츠 마사히데의 용노성을 공격해 항복시켜 버렸습니다.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우라카미 무네경과 오다 노부나가와의 화목을 알선, 우키타 나오야는 이 무렵에 우라카미가로부터 완전히 독립해 전국 다이묘가 됩니다.

텐쇼 2년(1574), 우키타 나오야는 중국 지방의 대국 모리가와 손을 잡는다. 그리고 우라카미 무네경을 중심으로 한 비젠, 비중, 미작(현재의 오카야마현)의 국인중이나 우라카미 무네 경하의 제세력에 힘입어 절절을 모방했습니다.

텐쇼 3년(1575) 우라카미 무네경의 복심이었던 아카시 유키오 등 중신들도 내응시켜 우라가미가 내부의 붕괴도 실시했습니다. 이것에는 우라카미 종경도 견딜 수 없고, 텐진산성의 전투에서 패하면 하리마국으로 퇴산합니다. 여기에 우키타 나오야는 비젠국과 비중, 미작의 일부를 지배하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우키타 나오야가 지배하에 둔 영내에서 여전히 우라가미가를 지지하는 세력이 있었습니다. 하리마국으로 물러난 우라카미 종경은 이러한 세력과 연락을 잡고 반우키타의 움직임을 선동합니다. 우키타 나오야는 소규모 반란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텐쇼 6년(1578) 우라카미 잔당은 일제히 봉기하고 유키시마를 점령, 한층 더 우라카미 종경이 텐진산성을 빼앗아 점거합니다. 우키타 나오야는 이 무력봉기의 진압에 몇 달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진압에 성공한 것에 의해 우라카미가 세력을 지배하 지역으로부터 추방, 토벌해 영내의 지배권을 명확하게 확립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 지방의 모리가와 기내의 오다가

그런데 우라카미 종경과 암투를 반복하고 있던 우키타 나오야. 그동안 기내를 지배하에 두고 있던 오다 노부나가는 장군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추방, 텐쇼 5년(1577) 가을에는 하리마국에 하시바 히데요시(후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파견해 중국 지방 침공에 착수합니다. 그런데 오다가에 속하고 있던 하리마국의 다이묘 국인이 오다가를 배반 모리가에 붙였습니다.

우키타 나오야의 기사에는 계속이 있습니다.

하즈키 토모요
작성자(라이터)학생 시절부터 역사와 지리를 좋아해, 사적이나 사찰 불각 순회를 즐기고, 고문서 등을 조사해 왔습니다. 특히 일본사에서는 중세, 세계사에서는 유럽사에 강하고, 1차 자료 등의 자료는 물론, 엔터테인먼트 역사 소설까지 폭넓게 읽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무장이나 성은 너무 많아 좀처럼 들 수 없습니다만, 특히 마츠나가 히사히데·아케치 미츠히데, 성이면 히코네성·후시미성을 좋아한다. 무장의 삶과 성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 일면도 있습니다.
일본 성 사진 콘테스트 .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