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하마 번도요토미가를 감시하기 위해서만 만들어진
나이토가의 가문 「나이토 후지」
- 관련된 성
나가하마 번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세운 나가하마성을 번청으로 불과 몇 년 동안만 존재한 번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 도요토미가를 감시하는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불과 1대 한정의 나가하마 번이 어떤 번이었는지, 해설합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첫 영지였던 나가하마
나가하마는, 당시 「기노시타 후지요시로」라고 자칭하고 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타니성의 싸움으로 전공을 세운 것을 이유로, 오다 노부나가로부터 하사된 토지입니다. 히데요시는 성지 다이묘가 된 것을 계기로 하 시바 히데요시라고 자칭합니다. 또, 나가하마는 이시다 미츠나리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나가하마성은 히데요시가 천하를 취한 후는 시바타 카츠야의 조카, 카츠요시가 성주가 되었습니다만 가미가타케의 싸움으로 히데요시에 항복, 그 야마우치 이치토요가 성주가 됩니다만, 텐쇼의 대지진으로 나가하마성 가 도괴, 자녀가 성의 밑받침이 되어 죽는다는 비극에 휩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키가하라의 싸움 후에 나가하마 번이 열리고, 성주로서 초대된 것이 나이토 노부나리·신정 부모와 자식이었습니다. 나이토 노부나리는 마츠다이라 히로타다의 서자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이모동생으로 알려져 있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중신으로서 13세부터 수많은 싸움을 함께 빠져 왔습니다.
나가하마 성주가 된 것은 게이쵸 11년(1606년)입니다.采地를 바꾸어 오강국 4만석을 받았습니다. 덧붙여 이 이동은 이에야스가 도쿠가와 히데타다에게 장군직을 양도해, 스루후성에 은거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에야스가 유수하는 동안 칸푸성은 나이토 노부나리에 맡겨져 있었습니다. 이 에피소드만으로 이에야스가 신성을 신뢰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가하마 번은 도요토미가를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되고 이에야스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혈연이며 중신이기도 한 그를 초대번주로 한 것이었다.
나이토 노부나리는 게이쵸 17년(1612년) 7월 24일, 나가하마성에서 68세에 병몰하고 있습니다.
2대째 번주가 된 장남의 나이토 노부 마사입니다만, 그는 게이쵸 20년(1615년)에 오사카의 진이 끝나면, 섭진국 다카쓰키로 이풍이 되어, 한층 더 후시미 성대를 향해, 초대 오사카 성대 되었습니다.
다카츠키 번은 그리스도인 다이묘 다카야마 우근의 영지이며, 그는 일본에서 기독교의 금교령이 나온 후에도 진행을 버리지 않고, 드디어 국외 추방이 되어 필리핀의 마닐라에서 평생을 마쳤습니다.
즉, 타카츠키 번은 번주의 영향으로 기독교인이 여전히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았던 곳입니다. 이에야스는 신뢰할 수 있는 가신이자 혈연이기도 한 나이토 노부마사를 번주로 삼아 그리스도 교직을 일소할 목적이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도요토미가가 죽어, 존재하는 의의가 없어진 나가하마 번은 그대로 폐번이 되어, 나가하마성도 철거되어 그 자재는 히코네성의 건축재가 되었습니다.
나가하마 번 정리
나가하마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그린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등장하는 빈도가 높고, 지금도 성지에는 역사 팬이 많이 방문합니다. 그러나 에도 시대에 들어가서 역할을 마친 나가하마 성은 철거되었고 나가하마 번은 폐번이되었습니다. 그 역사를 되돌아보면 영성성쇠를 느끼지 않고는 있을 수 없습니다.
- 관련된 성
- 작성자AYAME(라이터)에도 시대를 중심으로 한 역사를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취미는 사적과 사찰 불각 순회, 그리고 역사 소설의 독서. 궁금한 장소가 있으면 어디에나 날아갑니다. 최근에는 도검난무의 히트 덕분에 도검의 전시회가 늘어난 것을 은밀하게 기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