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쓰키 번 (1/2)두 집으로 다스린 작은 번
노미 마츠다이라가의 가문 「고요 유키사사」
- 관련된 성
기쓰키번은 노후고국 국동군·하야미군내를 접한 번으로 기쓰키성을 번청으로 오가사와라씨와 노미마츠히라라는 두 집이 에도막부 말기까지 다스린 가쓰시로 다이묘의 번입니다.
2만~4만석의 작은 번입니다만, 평지가 적은 분조의 원료인 풀 등과 재배해 번의 재정을 지지했습니다.
그런 기쓰번의 역사를 풀어 갑시다.
에도 시대까지의 기쓰키 번
에도시대 이전에 기쓰키의 땅은 오토모씨의 서류인 기무라씨에 의해 통치되어 왔습니다.
전국 시대 말기에는 오토모 씨와 시마즈 씨 사이에서 도요사와 합전이 발발하여 기축 전장이 됩니다.
이때 기츠키성의 성주였던 목부진직은 시마즈 씨의 가신인 신나 타다모토의 군을 2개월간 농성하여 견뎌냈습니다.
그러나 그 후 기부 진 나오는 주군이며 오오토모 소네의 최남인 오토모 요시츠네가 문록의 역할에서 실태를 훔쳐 개역하면 기부 진 진 나오는 성내를 깨끗이 닦고 아내와 함께 자해를 버립니다.
덧붙여 木付鎮直은 자신의 아이와 손자를 문록의 역으로 잃고 있습니다.
다스리는 자가 없어진 기쓰키의 땅은 도요토미가의 장입지(직할지)가 됩니다. 마에다 겐이래, 미야베 계윤이 봉행을 맡은 후, 게이쵸 원년(1596년)에 스기하라 나가보의 소령이 되었습니다.
기쓰키 번의 성립
게이쵸 4년(1599년)부터 기축의 땅은 호소카와 충흥의 소령이 됩니다. 호소카와 타다오키는 마츠이 야스유키, 아리요시 타치유키 등을 기축성대로 통치했습니다.
게이쵸 5년(1600년)의 세키가하라 전투의 전공으로 호소카와 타다오키는 토요젠 일국을 가증합니다.
호소카와가는 나카쓰성에 일단 본거지를 한 뒤 번청을 고쿠라성으로 옮겨 오구라번을 성립시켰습니다.
히로나가 9년(1632년) 호소카와 타다오키의 아들 타다리가 구마모토번에 전봉이 되면 오구라번은 오가사와라 타다진이 이봉됩니다. 그리고 목부에는 충진의 동생으로 기모토의 오가사와라 다다치가 4만석으로 입성해, 여기에 기쓰키번이 성립했습니다.
오가사와라 타다치는, 히로나가 14년(1637년)의 시마바라의 난출진과 시마바라성 재번 등에서 공적을 남기고, 번정에 있어서도 식림 사업에서 일정한 성과를 올립니다.
그 공적을 가지고, 마사호 2년(1645년) 5,000석가증 위에서 미카와 요시다에 가증 이봉됩니다. 그 후, 오가사와라씨로 바뀌어 기쓰키번에 이봉되어 온 것이 마츠다이라 히데부모입니다.
마츠다이라 히데부모는 타카다번 초대 번주·마츠다이라 중직의 장남으로, 노우미 마츠다이라가의 7대째에 해당합니다.
이 노우미 마츠다이라씨가 막부 말까지 기축 번을 다스렸습니다.
노미 마츠다이라씨의 통치
초대 번주 마츠다이라 히데부모는 25개 조의 법령을 내고 번정을 조율하고 검지를 실시하여 닛타 개발에 주력했습니다.
2대째 번주 마츠다이라 시게에이는, 이웃번의 날의 출번으로부터 백성이 이산해 번내에 침입한 곳을 보호해, 일출번과 협상을 하면서 온편하게 해결했다는 실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 관련된 성
- 작성자AYAME(라이터)에도 시대를 중심으로 한 역사를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취미는 사적과 사찰 불각 순회, 그리고 역사 소설의 독서. 궁금한 장소가 있으면 어디에나 날아갑니다. 최근에는 도검난무의 히트 덕분에 도검의 전시회가 늘어난 것을 은밀하게 기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