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도 번전국 시대부터 메이지까지 히라도를 지배한 마츠우라씨가 다스린다

히라도 번

마쓰우라 가문의 가문 '삼성'

기사 카테고리
번사
번명
히라도 번(1587년~1871년)
소속
나가사키현
관련 성, 절, 신사
히라도 성

히라도 성

관련된 성

히라도번은 히젠쿠니 마쓰우라군과 그기군군의 일부, 이키국을 다스린 번입니다. 히라도 번을 다스린 마츠우라 씨는 전국 시대보다 히라도를 지배해 온 마츠우라 씨에 의해 열려 메이지 시대까지 다스렸습니다. 히라도 번은 현재의 나가사키현 히라도시에 있던 번으로, 쇄국까지는 남만 무역에서 번창했습니다만 에도에서는 멀고, 외양 다이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에도막부 말은 자녀 중 한 명이 공가에게 며느리 메이지 천황의 어머니를 낳는 등 중앙과의 연결은 강했습니다.
그런 히라도 번의 역사를 풀어 갑시다.

남만 무역의 중심이었던 히라도

히라도는 네덜란드 상선이 처음으로 기항한 일본의 항구이며, 프란시스코 자비에르도 들른 땅입니다. 안도 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 쇄국이 완성될 때까지는 네덜란드·영국 등의 상관이 늘어서, 남만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히라도 번을 열고 막부 말까지 번을 다스린 마츠우라 씨는 히라도의 호족 「마츠우라 당」에서 대두해 온 일족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규슈를 평정하기 전부터 쿄순의 뜻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마츠우라씨는 히데요시로부터 소령을 안도받아 히라도에서의 무역으로 큰 이익을 올린 부유한 다이묘였습니다.

마츠우라번을 연 초대번주 마츠우라 진신은 정치적인 수완이 뛰어나 히데요시가 죽은 후 곧바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접근,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아들이 서군에 붙어도 건축중인 히라도성을 파기하고 충성심을 보인다는 황제를 해 버립니다. 그 결과, 소령을 안도하고 63,200석으로 히라도 번을 엽니다.

4대 번주 마쓰우라 시게노부의 무렵, 막부는 쇄국 정책을 진행합니다. 게다가 히라도 번이 네덜란드와의 무역을 독점하고 거액의 이익과 병비를 가지고 있는 것이 막부가 아는 곳이 되어, 네덜란드 상관은 폐쇄, 데지마로 옮겨져 무역의 이익은 막부가 독점하는 것에 되었습니다. 히라도번은 일부의 무역으로 히라도의 상인들이 참가하는 것을 허락하고 있었습니다만, 번의 내정은 단번에 괴로워지고, 이후 히라도번은 닛타 개발 등에도 힘을 쏟게 됩니다.

덧붙여 번의 재정은 5대 번주 마쓰우라동이 약 100년 넘은 비원, 히라도성의 재건축을 한 것으로 더욱 악화합니다. 한편, 마쓰우라동은 외양 다이묘로 있으면서 사찰 봉행 등의 막부의 요직을 맡고 있었습니다. 분명 유능한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에도시대의 풍속과 사건을 지금 전하는 고시야화

히라도번은 개번부터 메이지까지 12명의 번주가 다스렸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것은 9대째 번주인 마츠우라 키요입니다. 그는 번주를 은퇴한 문화 3년(1806년)부터 수필집 ‘고시야화’의 집필을 시작합니다. 마츠우라 키요는 번주였을 무렵 신분에 사로잡히지 않는 유능한 인재의 등용을 하거나 번교를 만들거나 하는 등 뛰어난 문치 정치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본인도 뛰어난 문재가 있었던 것 같고, 고시야화는 정편 100권, 속편 100권, 3편 78권에도 이르는 장대한 수필집이 되었습니다.

고시야화는, 타누마 시대부터 관정의 개혁까지의 정치, 제대명이나 기모토의 행동, 사건, 서민의 생활, 풍속 등을 세세하게 기록한 것입니다. 에도시대의 풍속이나 사건, 문화를 아는 데 있어서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어 있어, 현재도 원문이 출판되고 있습니다. 또, 17남 16녀라는 아이들로, 그 중의 11여자에 해당하는 아이코라는 공주가 공가의 나카야마 타다노에 며느리, 그 딸이 메이지 천황을 낳고 있습니다. 덧붙여서, 나카야마 타다노리는 메이지 천황을 보좌하고 도막에 힘을 다한 인물입니다.

황실과의 인연이 생긴 덕분에, 마지막 번주인 마츠우라 마사루는 메이지 천황의 측근이 되어 외양 다이묘이면서 메이지 유신 후에는 백작에 맡겨졌습니다. 현재도 남아 있는 마츠우라 사료박물관은 그의 옛 저택을 개조한 것입니다.

히라도 번 정리

히라도 번을 다스린 마츠우라씨는 네덜란드나 영국과의 무역을 해 온 역사를 가지고, 외양 다이묘로 있으면서 막부의 요직에도 붙어 있었습니다. 9대 번주 마츠우라 키요는 「학예 다이묘」의 별명을 갖고, 에도시대의 뛰어난 자료인 고시야화를 남기고 있습니다. 덧붙여 마츠우라가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어, 히라도 번을 다스린 마츠우라씨의 공적을 전하는 활동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관련된 성
AYAME
작성자(라이터)에도 시대를 중심으로 한 역사를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취미는 사적과 사찰 불각 순회, 그리고 역사 소설의 독서. 궁금한 장소가 있으면 어디에나 날아갑니다. 최근에는 도검난무의 히트 덕분에 도검의 전시회가 늘어난 것을 은밀하게 기뻐하고 있습니다.
일본 성 사진 콘테스트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