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치노헤 번모리오카 번보다 독립
남부가의 가문 「남부학」
하치노헤번은, 남부 모리오카 번 2대 번주·남부 중직이 후계를 정하지 않고 몰렸기 때문에 탄생한 번입니다. 막부의 명령에 의해, 남부 모리오카 번 10만석 중에서 2만석을 분할해 주어, 남부 중직의 동생 나카사토 수마(남부 직방)가 초대 번주가 되었습니다. 그런 하치노헤번의 역사를 풀어 갑시다.
남부 모리오카 번보다 독립적으로 탄생
모리오카를 중심으로 한 육오국은, 미토 남부씨가 개번한 모리오카번에 의해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2대째 번주인 남부 중직이 후계를 정하지 않고 병몰한 것에 의해서 탄생한 번입니다.
남부 중직은 죽음 직전, 4대째 장군 도쿠가와 가즈나에 후계자의 선정과 남부가의 존속을 사전에 소원하고 있습니다. 이 소원을 받아 가즈나는 10만석의 소령 중, 8만석을 중직의 동생 시치토 시게노부에 상속시킵니다. 그리고 나머지 2만석을 같이 동생 나카사토 나오사토에 상속시켜 하치노헤 번을 시작했습니다.
나카사토 나오호는 남부 모리오카 번 초대 번주 남부 리오리와 그 측실·센스인의 아이로서 탄생해, 하치노헤번 탄생과 함께, 이름을 남부 직방으로 바꿉니다. 그는 남부 이리오리의 7남에 있어서 통상이라면 번주의 지위 등 바랄 수 없는 입장이었지만, 형이 후계를 정하지 않고 없어졌기 때문에 번주가 되었습니다.
그는 하치노헤성을 축성하여 성시의 정비 등에 힘을 다하지만 41세의 젊음으로 병사합니다. 이때 모리오카번에 의한 독살설이 흘러 막부가 조사에 들어갔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막부 말기까지의 역사
하치노헤 번의 번사는 기근과의 싸움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2대 번주 남부 직정의 시대부터 부작에 의한 기근에 의해 번의 재정은 압박되고 있었습니다.
4대 번주 남부 광신의 시대에는 33번이나 기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덧붙여서, 막부 말기까지 하치노헤번은 9명의 번주에 의해 다스렸습니다만, 기근을 경험한 적이 없는 번주는 막부 말기의 8~9대째 번주뿐입니다. 하치노헤번의 번주 중에는 문무가 뛰어나 교양인도 많았는데, 심신 모두 부담이 컸던 것이 30대, 40대에서 사망하는 번주가 많았습니다.
마지막 번주인 남부 신순은 사쓰마 번주·시마즈 시게루의 14남이라는 남부씨와는 어떤 인연의 연루도 없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사쓰마 번과 깊은 연결이 있었기 때문에 戊辰 전쟁 때는 오우 에츠 열 번 동맹의 압력을 직접 받는 등 위기에 빠졌지만, 잘 돌고 전투에 참가하지 않고 메이지를 맞이했습니다 .
하치노헤 번 정리
하치노헤번은 에도시대 초기에 남부 모리오카번으로부터 독립한 소번이었습니다. 후계가 없었기 때문에 분할, 독립이라는 별로 없는 개번의 방법을 한 탓인지, 초대 번주·2대째 번주의 죽음에는 독살의 소문도 흐르고 있습니다.
그 후, 막부 말까지 9명의 번주가 탄생했습니다만, 거의 모든 번주가 기근에 시달렸습니다.
- 작성자AYAME(라이터)에도 시대를 중심으로 한 역사를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취미는 사적과 사찰 불각 순회, 그리고 역사 소설의 독서. 궁금한 장소가 있으면 어디에나 날아갑니다. 최근에는 도검난무의 히트 덕분에 도검의 전시회가 늘어난 것을 은밀하게 기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