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쓰성은, 사가현 가라쓰시 히가시성내에 있던 헤이죠입니다. 가라쓰 만에 돌출한 만지마 산 위에 혼마루가 쌓여 있어 현재도 직접 바다에 우뚝 솟은 이시가키를 볼 수 있습니다. 성의 좌우에 펼쳐지는 모래사장이 학의 날개처럼 보이기 때문에 「마이즈루성」의 별명이 있습니다. 현재는 벚꽃과 등나무의 명소로도 알려진 가라쓰성의 역사를 풀어 갑시다.
가라쓰 성의 역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인 테라자와 히로타카가 가라쓰의 땅에 봉인된 것으로 시작됩니다. 테라자와 히로타카는, 아버지와 함께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섬겼습니다만 히젠 나고야성의 보청을 맡아, 출정 제장이나 규슈 다이묘에의 취임을 담당한 것으로부터 출세해, 나가사키 봉행까지 올라간 인물입니다. 1차는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하고 있었지만, 게이쵸 2년(1597년)의 일본 26성인 처형을 계기로 기교합니다. 게다가 히데요시의 사후는 코니시 행장과 함께 무단파와 적대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테라자와 히로타카는 히데요시의 사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다가가 게이쵸 4년(1600년)에 일어난 세키가하라의 싸움에서는, 동군에 붙습니다. 그 결과, 데라자와 히로타카는 소령을 안도함과 동시에 아마쿠사 4만석을 증가시킵니다. 테라자와 히로타카는 이 증가를 얻어, 게이쵸 7년(1602년)보다 본격적인 가라쓰성의 축성을 개시합니다. 쓰키성시에는 히가시 가라쓰 측과 지속이었던 만지마산을 분리하고, 마쓰우라가와가 거기에서 직접 가라쓰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대규모 치수 공사도 실시하고 있습니다. 성의 건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출병 때의 거성으로 한 나고야성의 폐재가 이용되었습니다. 또, 규슈의 각 번에 보청을 의뢰해, 협력해 준 다이묘의 기록은, 현재도 야나가와 호리, 사가보리, 히고호리, 사츠마보리라고 하는 해자의 이름으로서 남아 있습니다. 에도막부가 열린 후에 만들어진 성에서 전투에는 사용되지 않고, 니노마루에 번청고텐, 산노마루는 사무라이 저택이 건축되었습니다. 덧붙여 현재 복원되고 있는 가라쓰성에는 천수가 있습니다만, 축성 당시의 가라쓰성은 천수대야말로 만들어져 있습니다만, 천수는 축성되지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츠키성 당시는 천수가 있었다」라는 설도 있었지만, 천수가 있었음을 나타내는 그림도 등의 기록은 전혀 없고, 현재는 처음부터 만들어지지 않은 설이 유력합니다. 테라자와 히로타카는 가라쓰성 축성뿐만 아니라, 성 주위의 모래사장에 방풍림으로서 소나무 숲을 만들고, 이것은 현재도 일본 3대 마쓰바라의 하나, 「무지개의 마쓰바라」로서 관광 명소가 되고 있습니다. 가라쓰 성은 메이지에 이르기까지 가라쓰 번의 번청으로 기능하여 5개의 다이묘가 성주로 들어갔습니다.
메이지 이후의 가라쓰 성
메이지 시대가 되면, 폐번치현에 의해 가라쓰번은 폐지되었습니다. 메이지 4년(1871년)에 가라쓰성은 폐성이 되어 건물은 철거되어 메이지 10년(1877년)에는 마이즈루 공원으로 정비되어 시민에게 개방되었습니다. 그리고, 전후 쇼와 41년(1966년), 문화 관광 시설로서 5층 5층의 모의 천수가 구축됩니다. 문과 망도 동시에 재건되어 가라쓰 성은 관광 명소가 됩니다. 헤세이 원년(1989년)에는 가라쓰시 관공서 앞에 히고호리와 이시가키가 복원되어, 2004년(1992년) 되었습니다. 2016년(2016년)에는 발굴 조사가 실시되어, 오테몬의 유구가 처음으로 확인됩니다. 2018년(2018년)에는 속일본 100명 성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같은 해, 천수각의 대규모 개수도 행해지고 있습니다. 덧붙여 현재의 가라쓰성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마이즈루 공원에서 천수각까지 단번에 오를 수도 있습니다. 마이즈루 공원은 벚꽃과 등나무의 명소로도 유명하며 매년 봄이 되면 많은 관광객으로 붐비는 장소입니다.
요약
가라쓰 성은 바다에 면한 해성으로서 매우 보기 좋게 보이는 성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이즈루 공원은 시민의 휴식 장소와 관광 명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초대 번주 테라자와 히로타카가 만든 무지개의 마츠바라는 나라의 명승으로도 지정되어 있습니다.
가라쓰성과 관련된 사건 읽기
시마바라의 난쇄국의 계기가 된 그리스도인들의 반란
에도시대 초기에, 크리스탄 농민들에 의한 대규모 반란이 발생합니다. 그것이 히로나가 14년(1637년) 10월 25일부터 다음 히로나가 15년(1638년) 2월 28일까지, 약 반년간에 걸쳐 계속된 「시마바라의 난」입니다. “시마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