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나이성은 오이타현 오이타시에 지어진 헤이조입니다. 현재는 오이타시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만, 축성 당시는 오이타강의 하구였습니다. 전국 시대 말기에 건축되어, 에도 시대는 후나이번의 번청으로서 기능했습니다. 오이타성・하양성・시라쿠성이라고 하는 별명을 가집니다. 그런 후나이성의 역사를 풀어 갑시다.
후나이성은 게이쵸 2년(1597년)에 후쿠하라 장고라는 무장에 의해 축성이 개시되었습니다. 후쿠하라 나가타카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고성두로서 역사에 등장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근의 1명으로서 문록의 역에는 히젠국 나고야 성 후의 수비를 맡거나, 후시미성의 보청에 관계하거나 해 출세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시다 미츠나리의 여동생을 정실로 했기 때문에, 이시다 미츠나리와는 의리의 형제에 해당합니다. 후나이성을 축성한 당시, 후쿠하라 나가타카는 지금까지의 영지에 더해 분고국 오이타군, 하야미군, 구주군의 3군을 맡겨져 12만석의 다이 다이묘가 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오이타는 하야카와 나가마사라는 인물이 다스렸지만 그는 기축성이라는 성으로 옮겨 후쿠하라 나가타카가 새롭게 오이타로 이봉된 것입니다. 후쿠하라 나가타카가 축성의 장소로 선택한 것은, 당시의 오이타 강의 하구, 「하락」이라고 불리는 토지였습니다. 쓰키성에 따라, 하락에서는 연기가 나쁘다는 것으로 지명이 「하양」으로 바뀌어지고 있습니다. 게이쵸 4년(1599년), 망루형 사중천수를 비롯한 성의 대부분이 완성되었지만, 이 해에 후쿠하라 나가타카는 이시다 미츠나리의 실각에 휘말려 부내성 축성의 과대한 부역 등 을 이유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개역되어 버렸습니다. 덧붙여 후쿠하라 나가타카는 이듬해, 게이쵸 5년(1600년)에 일어난 세키가하라의 싸움으로 서군에 아군, 패배한 후에는 출가한 후에 자해하고 있습니다.
다케나카 중리에 의한 개축
후쿠하라 나가타카가 개역된 후, 후우치성은 한때 하야카와 나가마사가 다시 불려 성대로 들어갔지만, 그도 또 세키가하라의 싸움으로 서군에 아군 했기 때문에, 성을 다루어져 버립니다. 대신 3만5천석으로 부내성에 입성한 것이 다케나카 중리입니다. 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참모로 유명한 다케나카 시게하루(세이베에)의 조카나 종형제에 해당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다케나카 시게카리는 부내성의 대개수에 임해 천수·인질망·종문망·대수문 등을 증축해, 현재의 형태로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개수된 후나이성은 북쪽에는 바다가 있었고, 동쪽은 오이타 강 하구의 습지대가 퍼져 있다는 천연 요해였습니다. 다케나카 중리는 성뿐만 아니라 오이타의 성시도 정비해, 현재의 오이타시 발전의 기초를 구축했다고 합니다. 덧붙여 부내성은 완성한 당시는 혼마루, 니노마루, 야마사토마루, 북쪽의 마루가 사카이식에 배치된 규슈에서도 손가락 접이의 큰 성이었습니다. 그러나 화재나 지진 등의 천재 재해에 많이 휩싸여 그 때마다 건물이 소실되거나 도괴하기도 합니다. 특히, 관보 3년(1743년)의 화재는 규모가 크고, 천수각을 포함한 성의 대부분이 소실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것 이후 천수는 재건하지 않고 메이지 유신을 맞이했습니다.
메이지 이후의 부내성
에도시대를 통해 후나이성은 후나이번의 번청으로서 기능하고 있었습니다만, 메이지를 맞이하면 메이지 5년(1872년)에 오이타현청이 성의 부지내에 구축됩니다. 이에 따라 해자가 매립되거나 건물의 일부가 부서지자 부내성은 서서히 왕년의 모습을 잃어갔습니다. 덧붙여 메이지 10년(1882년)에 서남 전쟁이 발발했을 때, 구마모토성을 사이고 다카모리가 공략하고 있었을 때, 오이타현청도 또 “나카츠대”라고 불리는 사이고 다카모리의 찬동자에 의해 공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종문망 등의 방어가 단단하고 공략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쇼와 20년(1945년), 태평양 전쟁 말기에 오이타 공습이 일어나, 현존하고 있던 망과 문의 대부분이 소실해 버립니다. 쇼와 38년(1963년)에는, 성지가 오이타현의 사적에 등록되어, 쇼와 40년(1965년)에는, 히가시마루 도착 도망·이중 망, 니시마루 이중 망, 오테몬이 복원되었습니다 했다. 헤세이 8년(1996년)에는, 니시마루와 야마사토 곡륜을 연결하는 복도 다리가 복원됩니다. 헤세이 25년(2003년)에는, 서쪽의 환적지에 지어진 오이타 문화 회관이 폐관, 발굴 조사나 정비를 실시한 후, 최종적으로는 천수 복원의 구상이 있습니다만, 경제적인 문제등으로부터 아직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2017년~2019년까지 단속적으로 철 파이프로 부내성의 천수각을 재현해, LED에 의한 라이트 업이 행해졌습니다. 현재의 부내 성터는, 조용한 공원이 되어 있어 벚꽃의 명소로서도 유명합니다. 휠체어 마라톤 등 각종 이벤트도 열려 있습니다.
후나이성과 관련된 사건 읽기
분고 무너짐오이타의 잠복 키리시탄 일제 검거
에도시대에 기독교가 금교가 된 뒤 막부에서 숨기도록 기독교를 믿어 온 잠복 그리스도인. 그런 잠복 그리스도인은 막부의 겹치는 적발에 의해 포박·탄압되어 왔습니다. 그 중 하나가 만치 3년(166